‘사랑의 매’로 둔갑한 체육계의 폭력 < 사회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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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며 배우는 지도 문화… 체육계 인권침해의 대물림
체육계 내 인권침해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다. 스포츠윤리센터(아래 윤리센터)가 발표한 ‘2024년 스포츠인권 심층 실태조사 보고서’(아래 2024년 윤리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이내 언어·정서적 폭력을 경험한 선수는 32.1%,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선수는 20.2%로 나타났다. 체육계 인권침해 문제가 수년째 반복되는 배경에는 폭력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는 지난 2020년 출범해 체육인 인권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윤리센터의 주요 업무로는 인권침해 사건 접수·상담, 예방 교육 등이 있다.
위계 속에서 반복되는 체육계의 폭력
체육계의 인권침해는 주로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 권력 차이에 기반해 발생한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지난 2025년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2022~2024년 학생선수 폭력피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해 주체는 주로 ‘학생 간’(78.2%)과 ‘지도자’(8.3%)로 나타났다. 윤리센터의 ‘2023 스포츠 인권·비리 실태조사 결과자료’에서도 ‘인권침해·비리’ 행사자는 선배 선수(39.8%), 코치(21.3%), 감독(24.5%)으로 집계됐다. 체육계 관계자들은 주된 인권침해 유형으로 ▲언어 폭력 ▲신체 폭력 ▲처벌성 훈련 등을 꼽는다. 2024년 윤리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권침해를 겪었거나 목격한 응답자들은 ▲모욕적인 욕설 및 비방(19.3%) ▲공포감을 주는 고함과 협박(16.4%) ▲조롱 및 비웃음(13.2%)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야구 선수였던 대학생 A(23)씨는 “지도자의 욕설이 일상적으로 반복돼 결국 욕설 자체에 대한 거부감마저 무뎌졌다”고 말했다. 경상대 체육교육학과 홍덕기 교수는 “인권침해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언어 폭력”이라며 “언어 폭력은 신체 폭력의 전조 증상으로, 빈도가 잦아지면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전했다.
신체적 폭력 역시 만연하다.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이 지난 2025년 윤리센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접수된 전체 인권침해 사건 3천279건 가운데 신체적 폭력 관련 신고는 564건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A씨는 “주로 선배 선수들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며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날 폭행당하는 것은 물론 별다른 이유 없이 구타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야구 선수였던 대학생 B(23)씨는 “선배가 후배들을 한곳에 집합시켜 엎드리게 하거나 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는 행위가 잦았다”고 말했다.\ 지도자들의 처벌성 훈련도 문제가 된다. A씨는 “야구 선수였던 당시 몸이 말라 살을 찌워야 했는데 한 지도자가 음식을 강제로 먹도록 해 토를 한 경험이 있다”며 “심지어 토를 한 이후에도 음식을 먹도록 강요했었다”고 말했다. B씨는 “의미 없는 체력 훈련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표적인 악습으로는 운동장을 계속해서 도는 일명 ‘뺑뺑이’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부경대 해양스포츠전공 김대희 교수는 “만약 지도자가 선수에게 운동장 10바퀴를 뛰도록 지시했다면 납득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체육계 내 인권침해를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가해자가 끊임없이 재생산된 결과라고 진단한다. 특히 ▲인권침해 인식 부족 ▲폭력적 위계 문화 ▲성과주의에 따른 폭력의 정당화가 폭력의 대물림을 촉진하고 있다.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면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화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24년 윤리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권침해를 겪었거나 목격한 응답자의 30.2%가 ‘초·중학교 시기에 해당 경험을 했다’고 응답했다. A씨는 “체벌은 줄어드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이 초등학교 때부터 언어폭력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국민대 스포츠건강재활학과 이대택 교수는 “운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폭력에 노출되는 구조”라며 “선수는 자연스럽게 폭력을 훈련 지도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실이 2021년 발표한 ‘학생선수 인권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1.1%가 폭력은 ‘운동부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홍 교수는 “폭력이 이미 내면화된 집단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집단 내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통이라는 명목하에 상급자의 권위가 절대적 규율로 작동하는 폭력적 위계 문화가 체육계의 폭력 관행을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 교수는 “선배나 지도자 등 윗사람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지도자의 말은 어길 수 없는 법으로 작동한다”며 “폭력은 강해지기 위해 견뎌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A씨는 “부조리를 경험해도 운동선수라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해 신고를 망설이곤 했다”고 밝혔다.\ 성과주의로 인한 폭력 정당화도 심각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9년 발표한 ‘초중고 학생 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와 스포츠 (성)폭력 판례 분석’에 따르면 신체 폭력을 경험한 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수는 ▲초등학생 38.7% ▲중학생 21.4% ▲고등학생 16.1%로 나타났다. 홍 교수는 “선수는 성공을 위해서 인권침해는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며 “심지어 학부모 중 일부는 지도자가 가해자임을 알더라도 훈련을 위해 피해 사실을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대부분의 지도자가 폭력을 사랑의 매로 둔갑시킨다”며 “학부모들은 그런 지도자를 용인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작동하지 않는 체육계 인권 보호 제도
체육계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으로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부실한 가해자 징계 ▲형식적인 폭력 예방 교육이 꼽힌다. 피해자가 인권침해 사실을 신고하면 뒤따를 보복을 우려해 폐쇄적인 문화가 공고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리센터가 지난 2022년 발표한 ‘스포츠 인권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인권침해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선수 중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초등학생 선수 50.6% ▲중·고등학생 선수 48.8% ▲프로·실업팀 선수 52%에 달했다. B씨는 “지도자 눈 밖에 나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 신고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피해자가 운동을 그만둘 각오로 가해자를 신고하더라도 신원이 노출돼 2차 가해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지도자인 가해자 일부는 피해자가 다른 학교·팀으로 이적할 수 없게 방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가시적인 방법으로 신고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하는 경우도 있다. 김 교수는 “지도자와 선수 간 갈등이 생기면 선수를 2군으로 내려보내거나 경기 출전을 제한하는 등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인천대 스포츠과학부 박상혁 교수는 “일부 지도자들은 선수에게 계약금 일부와 불합리한 계약 조건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2차 가해에 나선다”고 전했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부실하다는 점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지난 2024년 윤리센터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징계 요구 이행 현황’에 따르면 윤리센터가 설립된 2020년 8월부터 2024년까지 센터가 징계를 요구한 348건 중 미이행 건수는 140건으로 전체의 40.2%였다. 2025년 8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종목단체의 징계 미이행 시 윤리센터의 재정 지원 제한이 가능해졌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소송을 통한 징계 감경·취소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윤리센터의 징계 요청이 받아들여지도록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가해자가 소송을 통해 징계를 피하거나 수위를 낮추려고 한다”고 말했다. 징계 미이행 시 재정 지원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됐지만 실제로 활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2025년 10월 대한체육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윤리센터 설립 이후 징계를 요청한 사건 가운데 72건이 처리 기한을 넘겼음에도 종결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침해 예방교육이 인권침해를 예방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민체육진흥법」 제18조에 따르면 체육 지도자와 선수, 심판 등은 매년 윤리센터의 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진종오 의원이 윤리센터로부터 제출받은 ‘대한체육회 경기인 법정의무교육 이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경기인의 법정의무교육 이수율은 ▲2023년 24.6% ▲2024년 30.7%에 불과했다. 홍 교수는 “폭력 예방 교육이 법정의무교육이긴 하나 교육을 미이행한 체육 관계자에게 처벌하지는 않아 이수율이 저조하다”며 “심지어 1년에 한 번 온라인으로도 해당 교육을 이수할 수 있어 교육의 실효성마저 떨어진다”고 말했다. B씨는 “대부분의 선수가 온라인으로 교육을 틀어놓고 다른 일정을 소화한다”고 밝혔다.
‘훈련’의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 근절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은 체육계에서 반복되는 인권침해를 근절하기 위해 ▲조사 기구의 일원화 ▲실효성 있는 인권침해 교육 ▲가해 지도자 분리 체계 보완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은다. 윤리센터가 지난 2025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인권침해·비리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122일로 나타났다. 윤리센터의 조사가 끝나고 나면 해당 종목 단체의 조사가 별도로 이뤄지기 때문에 처리 기간은 더 소요된다. 홍 교수는 “조사 기관이 다양해 처리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돼 2차 가해가 발생한다”며 “시스템을 일원화해 효율적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효성 있는 인권침해 예방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홍 교수는 “아직 많은 지도자가 인권침해의 구체적 사례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해 현장에서 혼란을 겪는다”며 “상황별 대응 지침과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2017년 ‘미국 스포츠 안전 센터(U.S Center for SafeSport)’를 설립해 모든 지도자와 선수에게 정기 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센터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 토론 프로그램을 운영해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 대응 방안을 숙지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가해 지도자와 피해 선수를 분리하는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체육진흥법」 제18조의7에 따르면 윤리센터는 종목단체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지도자와 선수가 분리될 경우 해당 팀이나 경기 운영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어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교수는 “가해 지도자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선수의 대회 출전이나 훈련이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분리 조치가 이뤄지더라도 선수가 다른 지도자의 지도를 받아 훈련과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체 지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력이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한 체육계의 인권침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선수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안전한 훈련 환경이다.
글· 사진 김선우 기자\ socio_once@yonsei.ac.kr\
김선우 기자 onc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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