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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대학언론이 허무의 역병을 견디는 법 < 십계명 < 여론칼럼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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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대학언론이 허무의 역병을 견디는 법 < 십계명 < 여론칼럼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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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편집국장(노문·22)

병든 세상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속 도시 ‘오랑’은 페스트라는 갑작스러운 전염병으로 폐쇄된 유배지가 된다. 봉쇄된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탈출할 수 없다는 절망을 체감하며 그저 죽음이 자신을 비껴가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오늘날 대학언론이 마주한 풍경은 이곳과 닮았다. 대학언론 역시 ‘무관심’과 ‘무용론’(無用論)이라는, 생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병에 걸려 서서히 숨이 가빠지고 있다.

현재 대학언론을 가장 깊게 잠식한 것은 예산 부족보다 무서운 허무주의다. “요즘 누가 종이 신문을 읽냐”, “에브리타임이 더 빠른데 굳이 왜 만드느냐”라는 조롱은 끊임없이 들린다. 정성껏 만든 신문이 먼지만 쌓이다 창고로 직행하는 것을 목격할 때, 기자는 소설 속 랑베르처럼 이 허망한 성(城)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의미 없는 노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자괴감은 대학언론이 마주한 치명적인 병증이다.

진짜 비극은 이 냉소가 기자의 내면을 파고들어 ‘무성의’(無誠意)라는 치명적인 내부 합병증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카뮈는 재앙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위협은 죽음 그 자체보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타성과 방관이라고 지적했다. ‘어차피 읽히지 않을 기록’이라는 체념이 기어이 펜촉을 꺾고, 지면의 빈칸을 관성적인 텍스트로 채우는 데 익숙해지는 순간 기자의 영혼은 서서히 괴사한다. 독자의 무관심보다 무서운 기자의 자포자기, 즉 스스로 기록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 내부의 붕괴가 일어날 때 대학언론은 비로소 ‘사망 선고’를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력하게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재앙의 한복판에서 끝까지 환자 곁을 지킨 의사 리외는,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중략)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재앙에 맞서는 힘은 화려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각자의 직분을 완수하는 ‘성실성’이라는 것이다. 리외는 난세를 단숨에 구제할 기적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는 ‘투쟁’이라는 거창한 수사조차 거부한 채, 그저 눈앞의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직분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승리의 확신도, 구원의 보상도 없는 부조리 속에서 기어이 제 소임을 다하는 것이 카뮈가 말하는 ‘최소한의 윤리’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을 만드는 대학 기자가 붙들어야 할 마지막 보루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람들은 침체한 대학언론의 위기를 말하며, 화려한 기술적 혁신이나 자극적인 콘텐츠가 마치 하루아침에 역병을 종식할 기적의 해독제라도 되는 양, 대학언론의 모든 고질병을 단숨에 씻어내 주리라 믿는다. 하지만 구원은 신기루일 뿐, 마법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성실함이 필요하다. 대학언론에서의 성실함이란 조회수가 보장되지 않는 기사일지라도 문장 한 줄의 무게를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이며, 학내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현장의 소음을 견뎌내는 일이다. 이곳에 발을 딛고 선 이상, 나태함과 타협하지 않고 기자의 직분을 완수하는 것만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응전이다.

물론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자는 말이 세상의 변화를 외면한 채 도태의 길을 걷겠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성실함은 치열하게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학습하는 능동적인 진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신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허무주의에 무릎 꿇지 않는 마음이다. 변화라는 도구를 기민하게 익히되 그 도구에 매몰되어 본질을 잊는 나태함과 타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현대적인 성실함이다.

거창한 구원은 없다. 다만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낸 이들만이 ‘가난하지만 엄청난 사랑’의 보람을 얻는다. 대학언론의 미래 역시 오늘 제자리에 앉아 한 줄을 고민하는 미련한 성실함에 있다. 기록되지 않는 공동체는 기억되지 않기에, 우리는 그저 비웃음을 뒤로하고 오늘의 기록을 이어갈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치료법이다.

최유진 편집국장 bodo_geni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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