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시선] 생일날 저녁의 독백 < 여론칼럼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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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부 최인규 기자(언홍영·23)
3월 3일. 스물여섯 번째로 맞는 생일은 매번 신정과 설날보다 더 새해 같다. 어머니가 전날 끓여 싸주신 미역국 한 그릇으로 속을 데우고 나선 길. 새벽 공기는 아직 차다. 졸린 눈을 비비며 신문 뭉치를 돌리는 손끝에 우리대학교 소식들이 눅눅히 묻어난다. 내가 오늘 캠퍼스 구석구석에 놓아둔 종이 뭉치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갈 풍경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겨우내 정적에 잠겨 있던 교정은 개강을 맞아 학생들의 낮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다. 이내 들려오는 활기찬 웃음소리 사이로 취업 준비생들의 무거운 가방과 도서관으로 향하는 빠른 발걸음들이 교차한다. 화려한 동아리 홍보물보다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투박한 대자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난 호에 실린 등록금 기사를 다시 훑어봤다. 과연 내 기사가 누군가의 답답함을 해소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을까. 인상의 근거와 반대의 목소리를 치우침 없이 담아냈는지, 혹시 취재의 부족함으로 독자들의 의구심을 더 키운 건 아닌지 자꾸만 발걸음이 더뎌진다.
일간지를 펼쳐 읽어본 오늘은 지난해 이맘때처럼 시끌시끌하다. 지면 너머 중동의 정세는 고삐 풀린 말처럼 사납게 요동친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화(火)의 기운은 이것이 새로운 도약의 상징인지, 아니면 참혹한 파괴의 전조인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사방에 흩뿌린다. 연세춘추 개강호와 일간지를 마지막 한 줄까지 정독하며, 기자의 눈으로 세상을 읽어야 하는 자명한 이유를 되새긴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알아가는 설렘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기자의 일이란 결국 타인의 고통과 나의 일상을 잇는 가느다란 선을 긋는 일이다.
12년 전 오늘, 친할머니를 보내드렸다. 생(生)의 환희와 사(死)의 침묵이 교차하는 기묘한 날짜. 내가 태어난 날에는 축복처럼 함박눈이 내렸다더니, 오늘 하늘에서는 작별의 눈물을 닮은 이슬비가 고요히 쏟아진다. 마침 정월 대보름이고 하니, 주머니 속 종합견과류를 씹으며 달맞이 행사를 지켜본다. 자연스레 온 가족이 모여 오곡밥에 묵은 나물을 비벼 먹으며 무사태평을 빌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어머니는 정월 대보름이면 부스럼을 깨물어야 일 년 내내 무사하다며 입에 정성스레 호두를 넣어주시곤 했다. 어김없이 전화 한 통으로 안부를 전하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마침 달이 지구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다. 유독 붉은 빛을 띤 달이 비구름 뒤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선물 받은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를 넘긴다.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의 여백이 막막하면서도 고요하다. 계획적으로 살겠노라 다짐하며 펜을 든다. 조심스레 올해의 계획들을 적어 내려간다.
세상이 아무리 소란하고 차가운 비가 쏟아져도, 나아가야 할 방향만큼은 똑바로 기록해 둬야 한다. 날뛰는 붉은 말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이 혼돈의 시대를 방관자가 아닌 목격자로서 마주하겠다는 것. 그것이 자신과 맺은 첫 번째 약속이다.
최인규 기자 bodo_ganad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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