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 비판의 언어를 잃기 전에 < 여론칼럼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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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교수(글창융대·글창융철학)
모두가 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리를 각자의 정보 거품 속에 가둔다는 것을,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사실’을 소비하는 집단들이 생겨났다는 것을, 그 분열이 민주적 토론을 점점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이 진단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왜인가?
알고리즘은 비판도 삼킨다
알고리즘 비판 콘텐츠는 넘쳐난다.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칼럼이 쏟아지고, 학술 논문이 축적된다. 그런데 그 비판들은 유튜브에서, 인스타그램에서, 알고리즘이 설계한 피드 위에서 유통된다. 비판마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고 사라진다. 분노는 체류 시간을 늘리고, 체류 시간은 광고 수익이 되고, 광고 수익은 다시 알고리즘을 정교하게 만든다. 비판이 체계를 강화하는 연료가 되는 이 구조 앞에서, 우리는 점점 무력감에 익숙해진다. 그런데 이 무력감을 그냥 받아들여도 되는가.
반증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
민주적 토론이 작동하려면 최소한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공통의 사실 지평을 어느 정도 공유할 것, 상대방의 논거를 들을 의지가 있을 것, 원칙적으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신뢰가 있을 것. 이 조건들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최근 생생하게 목격한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사전투표 부정선거론은 어떤 반증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투표지 전수조사 결과가 나와도, 법원이 기각해도, 통계적 반박이 제시되어도 믿는 사람들은 믿었다. 이것을 단순히 무지나 편향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더 정확하게는, 반증이 작동하는 공간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논거의 힘’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소멸했다. 알고리즘은 그 소멸을 가속했다.
공론장이란 바로 그 믿음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18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와 살롱에서 싹텄다고 이야기되는 그 공간은 신분이나 권력이 아니라 ‘논거의 힘’만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되, 더 나은 논거 앞에서는 기꺼이 입장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토론의 장이었다. 물론 그것은 처음부터 이상이었고, 현실의 공론장은 언제나 배제와 불평등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고 공론장이 허구였던 것은 아니다. 공론장은 애초부터 실현되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현실을 비판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이념, 즉 규제적 이념이었다. 실현 가능한 목표는 도달하면 끝나고, 도달 불가능하면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적 이념은 목적지가 아니라 나침반이다.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끊임없이 현실을 비판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알고리즘이 공론장을 파괴하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안에 그 이념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요청으로서의 공론장
현대 민주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놓은 칸트는 자유의 존재를 끝내 증명하지 못했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유를 붙들었다. 자유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행위의 주체임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규제적 이념으로 요청했다.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포기했을 때 잃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공론장도 마찬가지다. 알고리즘이 공론장의 조건들을 하나씩 해체하고 있다는 것, 비판마저 콘텐츠로 소비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인정한 뒤에도 공론장이라는 규제적 이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비판할 언어 자체를 잃기 때문이다. 비판의 언어는 비판의 기준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 글도 예외가 아니다. 이 글 역시 알고리즘이 설계한 피드 위에서 소비되고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쓰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비판이 소비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쓰는 것, 그것이 공론장을 요청하는 가장 작은 실천이다.
그 실천은 여러 층위에 있다. 가장 작은 것은 일상의 태도다. 동의하지 않는 논거를 끝까지 읽는 것, 분노 대신 질문을 선택하는 것, 상대의 말이 반증될 수 있다고 믿는 것. 조금 더 큰 것은 제도에 대한 요구다. 플랫폼이 체류 시간 대신 숙의의 질을 설계 기준으로 삼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공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런 선택들이 쌓일 때, 공론장이라는 이념은 단순한 요청을 넘어 변화의 방향이 된다.
공론장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현상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요청하는 한, 우리는 아직 비판의 주체다. 요청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비판할 언어도 함께 잃는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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