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에 묶여 표류하는 154조 원 ‘치매머니’ < 사회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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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후견·임의후견·공공후견 모두 이용 저조, 제도 개선 필요해
‘치매머니’란 만 65세 이상 고령층 치매 환자들이 인지 능력 저하로 직접 관리하지 못하는 자산을 뜻한다. 지난 2월 12일 보건복지부는 ‘제5차 치매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해 국민연금공단이 치매 환자의 자산을 대신 관리하는 ‘공공신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직접 관리 방안을 거론할 정도로 치매머니는 국가 경제 흐름을 좌우할 잠재적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국립중앙치매센터는 의사결정능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치매 환자에게 공공후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행정 지연·범죄 노출·후견 공백,\ 치매머니의 현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아래 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2025년 발표한 ‘고령 치매환자 자산 전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만 65세 이상 치매 환자 약 124만 명이 보유한 치매머니 규모는 154조 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GDP의 6.4%에 달한다. 자산 유형별로는 부동산 자산이 약 74%인 114조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금융 자산은 21.7%인 33조 원으로 뒤를 이었다. 고령사회위원회는 오는 2050년 치매머니 규모가 48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이주열 교수는 “치매머니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 경제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인환 교수는 “치매머니라는 막대한 재산이 생산적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면 자본시장 유동성이 저하되고 경제적 활력이 약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의 자산은 ▲행정 처리의 어려움 ▲금융 범죄 가능성 ▲낮은 예방 제도 이용률의 측면에서 관리 공백에 놓여있다. 대부분의 치매 환자와 가족은 발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서류 발급이나 돌봄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치매 진단 후에는 행정 처리가 지체되는 경우가 많고 카드 및 통장 재발급도 어렵다. 김은실 사회복지사는 “치매 환자의 부동산이나 재산을 대신 처분하기 위해 인감과 서류를 발급받으려 방문하는 가족들이 많다”며 “이미 치매가 진행된 노인의 경우 결정이 자의적 판단인지 외부의 압력 때문인지 구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치매 노인 계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 범죄의 문턱도 낮다.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이들 중 상당수는 통장이나 인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변인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공받은 ‘치매 노인 대상 경제적 학대 판정서’에 따르면 가해자 유형 중 ‘가족’이 52%를 차지했다. ‘요양병원 등 시설 종사자’도 31.9%로 뒤를 이었다. 김 사회복지사는 “가족과 절연한 채 지내던 치매 노인 A씨의 통장에서 왕래 없던 자녀가 돈을 인출한 정황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며 “비슷한 의심 사례가 흔하게 관측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이상환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 치매 노인의 통장에서 현금 인출을 시도해봤다”며 “은행에서 아무도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고 인출해 주었다”고 말했다. 현재 치매 환자의 의사를 판단할 지자체 차원의 판단 기준이나 메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절차가 장기간 지연되거나 발급 거부가 이뤄진다.
치매머니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성년후견제도*의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년후견제도*는 치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나뉜다. 법정후견은 이미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경우 가정법원의 심판을 통해 후견인이 선임돼 재산 관리를 대신하는 방식이다. 임의후견은 향후 판단 능력 저하에 대비해 당사자가 공정증서로 미리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지난 2023년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성년후견사건 접수 건수는 8천823건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만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가 약 124만 명임을 고려하면 제도 이용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강미자 사회복지사는 “법정 후견인에 대한 보수가 적어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사회복지사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성년후견제도의 높은 문턱\ 이용률 저조로 이어져
치매 환자들의 후견인 지정이 저조한 원인으로는 ▲법정후견 선임 장기화 ▲임의후견의 복잡한 절차 ▲공공후견 사업 부진이 꼽힌다. 법정후견인 선임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돼 재산 관리의 공백이 발생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법정후견개시심판****이 완료되기까지 평균적으로 6개월에서 길면 1년까지도 소요된다”며 “후견인 지정이 긴급한 사안인 경우 자산 관리의 공백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치매머니 문제를 당면한 일본과 비교해 국내 법정후견개시심판 기간은 현저히 긴 편이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성인후견 관련 사건 개요’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에 접수된 성년후견 사건의 약 72%가 2개월 이내 종료됐다. 박 교수는 “후견인 제도는 피후견인의 법적 행위 능력을 제한하는 결정인 만큼 법원이 신중하게 판단한다”며 “의학적 감정을 거치다 보니 절차가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공익변호사는 “증빙 서류가 미비할 경우 보정 명령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말했다.
임의후견의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임의후견계약은 ▲계약 공증 ▲계약 등기 ▲임의후견 감독인 선임의 단계를 거쳐야 효력이 발생한다. 「민법」 제959조의14 제2항에 따르면 후견계약은 반드시 공증인이 작성하는 공정증서로 체결해야 한다. 이후 계약서와 공정증서 등을 갖춰 가정법원에 등기를 신청하고, 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해야 비로소 계약의 효력이 발생한다. 제 교수는 “가정법원에서 바로 후견개시심판을 신청할 수 있는 법정후견과 달리 임의후견은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임의후견은 절차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피후견인이 임의후견 감독인 선임비까지 지출해야 해 금전적 부담까지 가중된다”고 말했다.
무연고자·저소득층 등 성년후견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치매 환자에게 후견인을 선임해 주는 공공후견 사업의 정체도 지적된다.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이 지난 2024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최근 5년간 치매관리체계 구축 사업 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에서 양성된 치매 공공후견인은 1천301명이지만, 실제 활동 인원은 224명으로 17.4%에 그쳤다. 또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5년 발표한 ‘치매공공후견사업 운영 현황 및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후견 사업 시행 이후 2024년 4월까지 전체 256개의 공공후견 사업을 주관하는 치매안심센터에서 후견인 심판 청구를 단 한 건도 진행하지 않은 곳은 무려 92곳에 달했다.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는 “현재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하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며 “공공후견 사업 업무 비중은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공공후견 사업 예산이 부족해 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공후견인 활동비는 지난 2018년 사업 시행 이후 동결된 상태다. 공공후견인이 지원하는 피후견인 수에 따라 월 20만 원에서 최대 40만 원까지 지급된다. 배 변호사는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공공후견인에게 보수마저 제대로 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연스럽게 매칭률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성과가 부진해지면 다시 예산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제 교수는 “현 수준의 낮은 예산으로는 신규 피후견인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초고령사회 속 치매머니\ 체계적 관리 위해서는
전문가들은 치매머니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신탁 범위 확대 ▲임의후견 절차 간소화 ▲후견 절차 안내와 후견 활동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치매 환자의 재산을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신탁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탁은 위탁자가 자산 관리를 위해 은행·증권사 등 수탁자에게 재산을 이전하고, 수탁자가 자산을 운용해 발생한 이익을 수익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문제는 치매머니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임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담보대출이 설정된 주택과 연금 수급권 등은 신탁 활용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국민연금공단이 치매 환자 자산을 관리하는 ‘공공신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신탁 범위가 현금성 자산 위주로 설계돼 있다. 배 변호사는 “고령층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인 현실을 고려하면 현금 위주의 신탁 구조로는 치매머니 관리가 어렵다”며 “실질적인 자산 보호를 위해서는 부동산까지 포괄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신탁 범위 확대는 가장 실효성 있는 치매머니 관리 대안”이라며 “부동산의 경우 신탁회사가 임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경제적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임의후견 절차를 간소화해 제도 이용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교수는 “전자서명과 화상 공증을 통해 자택에서도 계약을 가능하게 하고, 공증과 동시에 법원 등기 전산망에 자동 등록되는 시스템을 구축해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지난 2022년부터 ‘온라인 성년후견 관리 시스템’(Office of the Public Guardian Online, OPGO)을 마련했다. 후견인을 청구하는 사람은 국가 디지털 인증 체계인 ‘싱가패스’(Singapass)를 통해 자택에서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다. 제도가 마련된 2022년 1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싱가포르의 후견인 신청 건수는 1만 600건 이상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 가량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성년후견 신청과 선임 이후 활동 전반을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배 변호사는 “공공후견 사업 대상자는 사실상 무연고자와 저소득층에 국한돼 있어 이외의 치매 환자 가족은 정보를 얻기 어렵다”며 “독일처럼 지방자치단체가 후견 상담을 제공해 제도 이용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지방마다 ‘성년후견청’(Betreuungsbehörde)을 두어 후견법 전반에 대한 정보와 후견인 신청법을 안내하고 있다.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야 할 때 적합한 인물을 선정해 법원에 추천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제 교수는 “치매 노인의 자산과 권리 보장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상황에서 치매머니를 둘러싼 제도적 공백을 방치하면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번질 수 있다. 치매 환자의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경제적 순환을 촉진하는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사진 김선우 기자\ socio_once@yonsei.ac.kr\ 양인서 기자\ socio_vanila@yonsei.ac.kr
* 성년후견제도: 질병·장애·노령 등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된 이들을 위해 후견인이 재산 관리와 신상 보호를 지원하는 제도.\ ** 법정후견개시심판: 법원이 피후견인의 상태를 확인한 후, 후견인 선임과 행사 권한 범위를 판결하는 과정.\
김선우 양인서 기자 onc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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