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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도 살아가는 우리에게 < 문화칼럼 < 문화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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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도 살아가는 우리에게 < 문화칼럼 < 문화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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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세계를 건너는 나만의 수영법

세상은 이미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기후 위기로 해수면은 높아지고 노동 현장에서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기계 사이에 끼어 으스러져 간다. 지난 2024년 제1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공현진의 소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멸망’이 예견된 세계에서 역설적으로 생존을 위한 수영을 배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차피 가라앉을 세상이라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물살을 갈라야 할까.

'수영장'이라는 이름의 서열화된 사회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곁에 있던 이의 죽음을 목격한 ‘희주’와 ‘주호’가 수영장 왕 기초반에서 우연히 만나 서서히 세상에 스며드는 과정을 그려낸다. 작품은 끝을 이야기하면서도 더 나은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우리의 애틋한 욕망을 담아낸다. 이소 문학평론가는 작품 해설에서 이 소설이 “냉소와 포기만 남을 거라고 섣불리 짐작하는 대신 이곳을 지탱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질감과 온기를 부여한다”고 평했다.

자기가 잘한다 싶은 사람은 \ 알아서 앞줄로 나오고, \ 못한다 싶은 사람은 뒤쪽으로 서세요.

소설의 두 주인공은 ‘잘하는 사람은 앞줄, 못하는 사람은 뒷줄’이라는 수영장의 암묵적인 규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서열화된 단면을 마주한다. 이들은 수영 강습반 ‘부동의 꼴찌’이자 사회가 요구하는 ‘적정선’에서 미끄러져 내린 존재들이다. 희주는 그간 여러 운동 수업을 통해 선생님도, 거울도 보이지 않는 맨 뒷줄에 서는 일에 익숙해진다.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동작을 곧잘 하는 앞줄을 보며 감탄하면 그만이었다. 반면 주호는 “뒤로 가라”는 주변의 눈치에도 맨 앞자리를 꼿꼿하게 지킨다. 그는 무언가를 처음 배우기 위해 모인 ‘왕 기초반’에조차 서열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못한다는 이유로 '꼴찌'로 여겨지는 것도 납득하지 못한다.  

수영장은 불합리함과 사회적 위계가 그대로 반영되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소설은 강압적으로 느껴질 만큼 엄격한 수영 강사가 주호와 희주에게 몸의 힘을 빼라고 다그치는 장면을 거듭해 보여준다. 이러한 풍경의 기저에는 ‘효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독한 애호가 있다. 박다솜 문학평론가는 “모든 일이 지연 없이, 낭비 없이 최대한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는 강박은 사람조차 시스템 작동을 위한 ‘자원’으로 여기는 셈법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이야기는 좀처럼 수영 실력이 늘지 않는 두 사람을 향해 강사가 욕설과 함께 분노를 터뜨리며 정점에 이른다.

주호는 강사의 빨간 얼굴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 당황한 강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 \ 강사가 분노한 건 우리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주호는 희주에게 그렇게 말했다.

늘 ‘눈치 없다’는 핀잔을 달고 사는 주호는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람에게조차 ‘눈치 없이’ “괜찮냐”고 묻는다. 그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필수 교양으로 여겨지는 눈치는 없지만, 오히려 그 덕에 다른 사람들은 짐작조차 못 할 감정의 이면을 감각적으로 이해한다. 그는 희주에게 강사의 분노가 자신들만을 향해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건 이후 강사는 해고되지만 이후 그 역시 ‘악당’이 아닌 시스템의 피해자였음이 드러난다. 해고된 강사를 마트에서 마주친 희주는 그가 계약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사도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불안정한 위치였기에 성과 압박에 시달리며 주호를 몰아붙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소설 속 묘사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서늘하다. 지난 2025년 10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의 41.5%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929만 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180만 8천 원으로 22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으며 사회보험 가입률에서도 비정규직은 국민연금 37.1%·건강보험 53.2%에 그쳐, 각각 87.9%와 95.0%인 정규직과 큰 차이를 보였다. 법무법인 오월의 곽예람 변호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철저히 사용자에게 종속된 채, 재계약을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특별법이 존재하지만 다양한 비정규직 형태를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침몰하는 세계의 꺼져버린 안전 센서

안전 불감증 ‘여전’,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 \ 뭘 모르는 소리였다. \ 안전보다 중요한 건 많았다.

‘수영’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이면에는 타인의 아픔에서 책임을 느끼는 두 주인공의 삶의 무게가 자리한다. 주호는 과거 플라스틱 화분 받침대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동료였던 이주노동자 ‘카샤’가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에 끼여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기계를 작동시킬 수 없어 일을 그만둔다.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라는 작업장 벽면의 문구는 형식적이고 이상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 빨리 돈을 벌고, 빨리 집에 가는 것이 중요했고, 안전을 지키려 시간을 지체하면 일을 더 오래 해야 했다. 넉 달 전에도 한 작업자의 손이 사출 성형기에 끼이는 사고가 있었지만 모두가 큰 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설이 고발한 노동의 민낯은 허구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지난 2025년 5월 SPC삼립 제빵 공장, 6월 태안화력발전소, 2월 대구 금속부품 공장 등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5년 3분기(누적)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아래 2025년 3분기 통계)에 따르면 사고 사망자는 457명으로 2024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다. 이 중 끼임 사고 사망자는 8.1%로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외국인 노동자 사망의 비중은 13.1%에 달한다.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1981년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은 재해 예방의 구체적 내용을 규명하기보다 형식적 법적 요구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박미진 안전보건정책실장은 “산안법은 현장 상황을 고려하기보다 획일적 기준만 강요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며 “특히 이주노동자와 소규모 사업장엔 예방의 기능이 제대로 닿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2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책을 신설하며 경영책임자의 산업현장에서의 책임을 강화해 안전을 보장하고자 했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금속노조법률원 서범진 변호사는 “현장이 체계적인 위험 관리 방법을 학습하지 못해 동일한 위반이 반복되고 있다”며 “실상은 책임 면피를 위한 명목상 직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2024년 1월 중대법이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으나 2025년 3분기 통계에서 이들 사업장의 산재 사망자는 전년 대비 10.4% 증가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속 사망자가 24.5%나 급증했다. 박 실장은 “산업재해는 결코 노동자 개인의 주의력이나 선의만으로 예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현장과 정책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일터의 생명 가치를 중시하는 모든 주체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나는 정말 책임이 없는 걸까 \ (……) \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 주호는 그 물음에 더 마음을 기울였다. \ 기울어진 마음은 점점 가라앉고 \ 가라앉아서 주호의 세계를 무너뜨렸다.

동료의 무고한 죽음에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자 주호는 끊임없이 ‘나는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자문한다. 그는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고, 급기야 자신과 상관없는 뉴스들을 보면서도 숨을 쉬기 어려워한다. 서 변호사는 “실제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많은 노동자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정상적인 노동을 이어가기 어려워진다”며 “특히 사망 사고의 경우 유족에게도 평생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다”고 강조했다.

\ 멸망 속에서 찾아낸 우리만의 부력

‘부고’라는 글자 옆에 적힌 이름을 \ 노려봤다.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 자신이 그 이름을 전혀 모른다는 \ 사실을 곧 알아챘다. \ (……) \ 희주는 자신이 무서웠다.

동료의 사고에 대한 죄책감이 주호를 주저앉혔다면 희주를 수영장 맨 끝줄로 밀어낸 것 역시 나와는 먼 타인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같은 학교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에도 오직 공부에만 몰두하던 희주는 그가 누구인지, 이름조차 몰라 우는 아이들 틈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모르는 이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희주는 타인의 비극 앞에서도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무감각해진 자신에게 섬뜩함을 느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희주는 사회가 그어놓은 ‘적정선’의 궤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녀는 의대에 갈 수 있는 성적임에도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교사가 되기를 택한다. 꿀벌의 실종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도시 침수 등의 기후 위기 기사를 강박적으로 스크랩하며, 동물 보호를 위해 채식을 실천한다. 채식주의자인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질린다”고 비난할 때도, 학부모들이 뚱뚱한 외형을 지적할 때도, 심지어 요가 강사가 실수로 “뚱땡이한테 맞아 죽을 뻔했다”는 험담 문자를 보냈을 때조차 희주는 분노하지 않는다. 타인의 얕은 무례함은 이미 그녀의 관심 밖의 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무서운 게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 같이 떠내려가는 것, \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희주는 아이들에게 “어차피 멸망할 세계라면, 우리 함께 멸망하자”고 말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결국 해고당하고 만다. 그러나 얼핏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한 체념으로 읽히는 이 말에는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자’는 사랑이 담겨있다. 어차피 세상에 끝이 있다면 타인의 죽음을 애써 외면한 채 자신을 ‘적정선’에 끼워 맞춰 멸망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그저 그 끝에 이를 때까지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뿐이다. 나란히 물에 잠기며 사라지는 것 또한 사랑의 한 형태이기에, 이 애틋한 연대는 이제 두려움이 아닌 따스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타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희주와 주호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을 치유하는 것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연결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자신들을 수영장 맨 뒤로 밀어냈던 아픔을 위로한다. 이전에 수영장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상처 입었던 두 사람은 수영장 밖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중요하지 않은 말들’을 나눈다. 거창한 위로 대신 “오늘은 장바구니에 뭐가 들었어요?”라며 안부를 확인하는 물음이나 “야채튀김이 최고예요”라는 사소한 대화는 주류에서 밀려난 그들을 물 위로 띄우는 안전한 부력이 된다. 강사가 해고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맨 뒷줄에 선다. 그러나 다른 회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느리지만 끝까지 나아가는 존재로 거듭난다.

전 죽고 싶다거나 죽으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해요. \ (……) \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충동이나 갈망 없이도, \ 살고 싶다는 충동에 절실하게 시달렸다. \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타인의 죽음을 목격한 후 주호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희주도 이에 공감하며 살아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두 사람이 이미 살아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살아있는 것처럼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 ’살아 있는 것처럼 살 수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소설은 동료의 죽음 앞에서 책임을 끈질기게 묻는 마음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세상, 성적이 좋아도 의대에 가지 않는 것이 존중받는 세상, 채식이 ‘질리는’ 일이라고 치부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작품은 두 사람의 여정을 통해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결코 개인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물속과 물 밖. 시끄러움과 고요함. \ (……) \ 밀어내는 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 두 사람은  \ 손안에 들어오는 물을 만진다. \ 움켜쥔다. 갈 수 있는 만큼 간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갈 수 있는 만큼 가도록 기다려 준다면,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온 안온한 일상은 조금 불편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온함의 밑바닥에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비정함이 깔려 있다. 박 문학평론가는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편리함’은 많은 것들을 희생한 결과이기에 마냥 추구돼야만 하는 절대선(絶對善) 같은 것일 수는 없다”며 “편리함에 대한 반성이 범사회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세상의 기준으로는 ‘꼴찌’일 지라도 희주와 주호는 자신만의 부력을 찾아냈다. 현실의 우리 역시 ‘적정선’이라는 허구에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숨 가빠할 필요 없다.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발목 잡히고, 효율적이지 않은 일에 마음을 쏟으며, 손안에 들어오는 딱 그만큼의 물을 움켜쥐는 것. 그것이야말로 침몰하는 세계에서 우리를 ‘살아 있는 것처럼 살게 할’ 수영법일 것이다. 

글 최예원 기자\ muna_sagewon@yonsei.ac.kr

<사진제공 문학과지성사>\ <일러스트 Gemini>

최예원 기자 muna_sagewo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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